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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양어업의 위대한 첫 걸음
등록일 : 2007/06/29 오전 10:37:03    조회 : 4762

인도양 참치연승 첫 시험조사선 지남호


우리나라 원양어업 역사의 첫장을 장식한 지남호는 원래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이었다.
1946년 미국의 시애틀 수산시험장이 연구활동을 목적으로 당시 49만 달러를 들여서 강선으로 신조한 종합시험조사선으로 그 뒤 1949년 3월 당시 원조자금 32만6천달러를 지불하고 우리나라로 도입했다.
2백30톤급(G/T는 4백톤급)에 6백마력짜리 디젤기관을 장착한 지남호는 원래는 건착어업을 할 수 있는 어선으로 건조되었으나 연승어업도 할 수 있게 설비가 되어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최첨단이라고 할만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빙장 및 냉장이 가능하도록 냉장실은 물론 방향탐지기, 수심탐지기, 어군탐지기 등 각종 전자장비를 고루 탑재하고 있었다.
이 어선은 이승만 대통령이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그쪽에서 부(富)를 건져 오리라』는 뜻으로 선명을 지남호(指南號)로 명명했다고 한다.
도입 직후 이 어선은 연근해 시험조업에 이용되기도 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한때 힌코끼리로 불리기도 했다.
인도 풍습에 힌코끼리를 받은 사람은 그 코끼리를 죽여서도 안되고 팔아서도 안되며 늙어 죽을 때까지 먹여살려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닥친다는 미신이 있다. 인도양 시험조업 출어시까지 막대한 괸리비만 잡아먹어 힌코끼리처럼 골치거리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었다고 한다.
지남호는 도입직후 정부(해무청)에서 관리를 하다가 그후 1951년에 설립된 제동산업으로 소유권이 넘겨져 마침내 1957년 6월 역사적인 인도양 시험조업에 나서게 된다.
지남호의 역사적인 출어식은 57년 6월 26일 부산 제1부두에 자리잡은 해양경비대 강당에서 정부와 수산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실제 출항은 이보다 며칠 뒤인 6월 29일에 이뤄졌다.
이날 출어식에서 당시 지남호 선장이었던 윤정구 선장은 답사를 통해 『출어식에서 보낸 격려를 국가의 지상 명령으로 알고 기필코 시험조업에 성공하겠다』며 굳은 포부와 정열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국내 신문들은 지남호 출어 소식을 대부분 사진과 함께 4-5단 크기로 보도를 했다.
6월 29일 부산항을 출항한 지남호는 일본 시모노세끼항에 입항해 이곳에서 7월 10일까지 급유 및 보급과 수리를 완료하고 11일 다시 출발해 17일 당분간 기지로 사용키로 했던 대만에 입항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18일에는 대만 동쪽 해상에서 어법훈련과 어장탐색을 위한 첫 투망을 했으나 헛탕만 쳤다.
우여곡절 끝에 지남호는 필리핀 근해와 싱가폴 근해로 조업지를 옮겨 시험조업에 나섰으나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기름마저 떨어져 오도가도 못한채 한동안 싱가폴에 발이 묶여 있다가 어렵사리 당시 싱가폴의 유일한 한국인 무역회사였던 한국무역진흥회사를 통해 2,500 달러를 빌려 기름을 채우고 선원들의 식량과 선수품을 보충한 뒤 8월 11일 다시 인도양을 향해 출발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8월 14일 마침내 인도양 니코발아일랜드 해역에 도착, 광복절인 8월 15일 오전 5시 우리나라 원양어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참치연승어업의 실질적인 첫 투승이 시작되었다.
동경 94도 29분, 북위 7도48분. 지남호 선원들은 윤정구 선장의 지시에 따라 낚시를 던지기 시작했다.
가슴은 설레고 마음은 조급했지만 몸짓은 한없이 서툴렀다. 조업 경험이 없어 한동안 빈 낚시만 건져 올려야 했다.
그러다 얼마 안가 수면위로 참치(실제는 새치였다)의 거대한 어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성공이었다.
「와!」하는 선원들의 함성 속에 진행된 이날 조업은 당시로서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어획량은 0.5톤으로 그리 많진 않았지만 순수한 우리 기술과 우리 선원들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그후 하루 0.5-1톤 안팍의 어획고를 올리며 계속 조업을 벌여 모두 10톤을 잡았다.
지남호가 부산에 돌아온 것은 부산을 떠난 지 108일만인 10월 4일이었으며 항해 및 조업일수 53일 중 실 조업기간은 15일 남짓이었다.
지남호의 인도양 출어소식은 당시 싱가폴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에 보도가 되어 이승만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지남호가 잡은 참치(실제는 새치)가 부산에서 비행기로 공수되어 서울 경무대로 옮겨져 이 대통령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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