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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양어업 50주년의 발자취와 의미
등록일 : 2007/06/29 오전 10:40:24    조회 : 5000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발자취>

지난 1957년 6월말 참치연승 시험 조업선인 지남호가 부산항을 출항해 인도양에서 참치조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지 만 50년이 되었다.
지남호는 인도양 참치연승 시험조업에 성공을 거둔 뒤 다음해인 1958년 1월 다시 남태평양으로 출어해 1년3개월여 동안 본격적인 상업조업으로서 참치잡이에 나서게 된다.
그후 지남2호, 3호 등 잇따라 참치연승어선들이 새로 등장하게 되고 1968년부터 마침내 초저온 냉동시설을 갖춘 참치연승어선으로 참치를 잡아 고가의 횟감용 참치를 일본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1966년 5월 한국수산개발공사가 제601 강화호를 대서양수역에 출어시켜 원양트롤어업이 시작된다. 이어 1966년 7월에는 북양트롤어업 첫 시험조업을 실시한 뒤 1968년부터 본격적인 북양트롤어업이 시작되었다.
이와함께 참치선망 조업은 1971년 제동산업(주)이 미국에서 중고선 3척을 도입해 파나마를 기지로 조업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성장 가도를 달리던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1973년말 오일쇼크로 인한 유가급등으로 어업경비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져 한동안 침체국면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1977년 3월 미·소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로 세계적인 황금어장인 캄차카 어장에서 우리어선들은 철수를 해야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어 1978년 12월 남빙양 크릴 시험조업이 실시되는 등 1991년까지 10차례에 걸친 시험조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었다.
1979년 7월부터는 북태평양 공해 오징어 유자망어업 시험조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원양어선 세력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 1992년 12월말 UN 결의로 북태평양 오징어 유자망어선 조업이 전면 금지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오징어어업의 전승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또한 1985년 2월 대왕수산(주)과 구일산업(주) 소속 어선들이 북서태평양 공해 어장에서 원양꽁치봉수망어업 시험조업에 나섰으며 1987년 이후 꽁치봉수망어업은 정식 허가어업으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1994년 11월 UN 해양법협약 발효로 자원을 가진 강대국들과 연안국들이 잇따라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를 함에 따라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2000년 1월부터 한·일 어업협정 결과로 북해도 어장에서 북해도트롤어선들이완전 철수하게 되는 아픔을 겪는다.

<원양어업 50주년의 의미>

◇외화획득의 원천, 수출전략산업으로서의 역할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과거 6.25 동란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우리나라가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며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데 초석을 놓는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 시절 우리 원양어업은 주요 수출산업으로서 외화획득을 통해 경제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실례로 1958년 6만4천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 원양어업 수출액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한때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5%(1971년 : 총수출 10억6천7백60만7천달러 중 5천5백10만3천달러를 차지)를 상회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의 50%(1979년 : 수산물 수출 8억5천5백53만9천달러 중 4억5천6백50만9천달러를 차지)를 상회한 시절이 있을 정도로 우리경제에 기여했다.

◇외교첨병으로서의 민간외교 역할
우리 원양어업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을 누비며 외교첨병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민간외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 외교 관계를 더욱 폭넓고 실질적으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미치지 않는 연안국들과 국교를 수립하는데 가교역할을 하기도 했다.
민간외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제 외교 관계를 더욱 폭넓히고 실질적으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일례로 아프리카 기니國과 기네비소國의 경우는 우리 원양어업이 민간 수산외교를 통해 국교관계를 맺은 사례로서 민간외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안국과의 민간외교를 통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데 한 몫을 해내 국익에 보탬이 되도록 했다.
특히 FAO수산위원회(COFI), 대서양참치보존위원회(ICCAT), 인도양수산위원회(IOFC) 등 주요 국제수산기구에 대한 동향을 항시 예의 주시하는 등 정부의 국제수산기구에 대한 수산외교를 적극 지원해 왔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안정 기여
특히 일자리가 부족했던 그 당시 전국 각처에서 선원들을 승선시켜 고용 안정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 시절 원양어선원들은 외국에 나가 외화벌이를 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거액의 목돈을 쥘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이 일반화되면서 선망의 직업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원양어선원의 경우 1958년 불과 17명으로 출발해 1972년 1만2천230명으로 1만명을 돌파한 이후 1975년 2만3천명으로 최고치에 도달하며 산업화가 진행되던 그 당시 일자리의 상당부분을 창출해 냄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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