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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0주년 맞아 경제개발 주역 원양어선원 역할 재조명
등록일 : 2015/11/05 오후 5:22:06    조회 : 4903

정부, 해외 선원묘지 이장 적극 지원… 40년만에 순직 선원 고국 품으로 귀환


광복 70주년을 맞아 1960-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원양어선원 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재조명이 최근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원양산업협회는 지난 2002년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원양선원 묘지에 대한 정비 보수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데 이어 최근에는 해외 선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선원 유해를 국내로 이장토록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원양어선 출항지인 부산시는 1960-1970년대까지 국가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 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원양어업과 원양어선원들에 대한 스토리 메이킹 프로젝트 및 원양어업 역사관 조성을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원양어업 및 원양어선원들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재조명 작업은 최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공헌이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재조명 받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원양어업과 원양어선원들은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소외된 데 따른 것이다.
1957년 인도양 참치연승 시험 조업의 성공으로 시작된 우리 원양어업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 등 국가경제 발전에 초석을 쌓았으며 실제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를 외화가득율을 바탕으로 수치적으로 따져 보면 파독 광부와 간호사 기여도보다 훨씬 높은데도 정작 국민들의 관심은 받지 못해 왔다.
한국원양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원양어업이 70년대말까지 수출을 통해 벌여들인 외화 획득 금액(내수분은 비포함)은 총 19억9,289만8,000 달러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에 보낸 송금액에 비해 10여배 이상 많다. (*파독 광부 간호사 1965-1975년까지 송금액 총 1억153만달러 : 과거사 위원회 집계 자료)
당시 원양어업으로 인한 외화획득 금액은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5%를 상회한 적도 있으며(1971년 : 총수출 10억6,760만7,000 달러 중 5,510만3,000 달러를 차지) 우리나라 전체 수산물 수출의 50%를 상회(1979년 : 수산물 수출 8억5,553만9,000 달러 중 4억 5,650만9,000 달러를 차지)할 만큼 우리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원양어업은 당시 미비했던 우리나라 산업 구조로 볼 때 단일 업종으로는 요즈음 반도체 산업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우리나라의 불루칩 산업이었다.
이역만리 해역에서 높은 파고와 싸우다 순직한 수백명이 넘는 원양선원들의 숭고한 희생이 바탕이 되어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원양산업협회는 원양어선원들의 이같은 숭고한 희생을 기려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억700여만원의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원양선원 묘지(총327기)에 대한 정비 보수 작업을 벌여온 데 이어 최근에는 이들 원양어선원들의 유해를 국내로 이장하는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현재 해외선원 묘지는 스페인 라스팔마스, 떼네리페, 태평양 사모아, 타이티, 피지, 수리남, 앙골라, 세네갈 등지에 조성되어 있으며 선원묘역 관리 및 보수작업을 매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처음으로 스페인 라스팔마스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유해 1기를 국내로 이장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지원한 바 있으며 11월 4일 스페인 라스팔마스 해외선원묘지에 안장된 유해 4기를 국내로 모셔오는 등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선원묘지 이장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스페인 라스팔마스 해외선원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형의 유해를 전달받은 김모씨(61·부산거주)는 『연대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형이 원양어선을 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배를 탔다가 지난 1976년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사연을 소개하고 『그동안 개인적으로 형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 오려고 노력을 많이 했으나 절차가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는데 이번에 정부와 한국원양산업협회가 도와줘서 너무 감사하다. 김해 선산으로 모실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국원양산업협회는 해외에서 조업중 숨진 원양선원 유족들이 국내 이장을 희망할 경우 신청을 받아 해외 선원묘지에서 유해를 국내로 이장하는 행정적 절차 등을 적극 지원하고 유해를 국내로 모셔오는데 필요한 경비도 정부 예산으로 전액 지원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원양산업협회는 지난 2002년 라스팔마스에 흩어져 있던 묘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순직 원양어선원들의 영령을 모신 납골당을 건립했으며 2003 ~2004년도에는 사모아 원양어선원 묘지 축대공사 및 묘역 정비를 실시한 바 있다. 이어 2012년에는 수리남 파라마리보지역에 산재되어 있던 묘지(31기)를 대대적으로 정비, 납골 묘역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이들 해외 선원묘지에는 지난 1960년대 이후 이역만리 먼 해역에서 고향을 등지고 원양어업 역군으로 일하시다 운명을 달리한 327명의 순직 원양어선원들이 잠들어 있다.

한편 1960년대 초기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은 참혹한 수준으로 6.25 전쟁 통에 그나마 있었던 산업시설마저 붕괴되었고 경제 성장의 기반을 형성할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60-70 달러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125개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 국가에 속했으며 실업문제가 심각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해외로 눈을 돌려 외교 관계조차 수립되지 않은 나라까지 진출해 오대양을 누비며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 제공은 물론이고 천금 같은 달러를 수출을 통해 벌어들였다. 특히 원양어획물 수출은 해외 자원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출품에 수반되는 원자재 비용이 전혀 없어 외화 가득률이 100%에 달했고, 단 1 달러의 외화도 소중한 1960년대 한국 경제상황에 비춰 볼 때 국제수지 개선, 국민소득 향상, 나아가 경제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당시 원양어업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외화가득율 높은 수출산업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안정 기여, 국제외교 중 민간외교 분야에서의 역할, 우리 국민의 부족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 우리 국민의 활동시야를 해외로 확대, 우리나라 조선기술 및 어업기술을 한차원 끌어올린 점 등 다양한 역할을 해냈다.
※ 1958년∼1979년까지 원양어업 외화획득액(수출액) : 19억9,289만9,000 달러(한국원양어업 30년사 참조)
※ 1965년∼1975년까지 독일 광부 및 간호사 송금액 : 1억153만 달러(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 참조)
- 1967년∼1967년의 송금액의 경우 총수출액 대비 각각 1967년 1.6%, 1968년 1.9%, 1969년 1.8% 기여
※ 파독광부 123명 첫 출국 : 196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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